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이 들통 난 후에도 왜 핑계를 대고 계속 합리화를 할까? 거짓말 논란은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의 합리화로 자신을 도덕적이고 정당한 존재로 여기고 싶어 한다.
어릴 적부터 양치기 소년이나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통해 거짓말이 어떤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배워왔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물리적인 변화가 나타나며, 거짓말이 자신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양치기 소년은 반복되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짜 위험이 닥쳤을 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거짓말이 가져오는 결과와 정직의 가치를 상기시키는 교훈을 제공하는 흔한 이야기다.
며칠 전 이웃 할머니가 동네 야채가게가 거짓말을 한다며 불만을 얘기했다. 할머니 얘기인즉 어떤 상품에는 생산지 표시가 있고, 어떤 상품에는 생산지 표시가 없는데 표시가 없는 상품은 수입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산지를 거짓 표시하는 것보다 차라리 표시를 안하는 것이 적발되더라도 벌칙이 약해서 미표시 사례가 많은 듯 했다.
할머니께 정직하지는 않지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니, 당연히 밝혀야 하는 것인데 밝히지 않았으니 거짓이라고 역정을 냈다. 아마도 할머니의 지적에 잘못했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히려 가게 주인의 불쾌해 하는 태도가 화를 돋운 듯 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거짓말은 생존과 적응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테면,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자신의 이미지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거짓말이 있다. 결국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원하는 대상을 얻고자 할 때 성취를 위한 필요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타적인 동기에 의하여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흔히 이런 경우에 하는 거짓말은 선의(善意)의 거짓말이라고 한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할 때도 있으니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엄격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심리학자 사이토 이사무는 “일상에서의 거짓말은 상대를 속이기 위해 의식적이고 책략적으로 한다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방어수단으로 할 때가 많다”라고 했다.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자면 거짓말과 합리화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최근 모 가수의 음주운전 사건을 보면서도 거짓말의 댓가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는계기가 되었다. 뻔히 드러날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여러 거짓말을 번복하여 자신의 방어수단으로 사용했다. 거짓말을 통해 법적 문제를 피하려는 시도가 큰 비난을 받았고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 사건이다.
현대사회는 정치적, 경제적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도덕적 가치관이 상실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또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거짓말이 밝혀진 후에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행동과 신념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이 거짓말하는 목적을 알아채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거짓말에 민감하며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도 모르척 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칸트는 만약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이 보편화되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질 것이고, 따라서 한 사람의 거짓말이 허용되면, 모든 사람의 거짓말이 허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는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칸트의 이같은 주장에 많은 철학자들의 비판이 제기된 것처럼 칸트의 엄격한 도덕 법칙이 적용 가능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칸트의 주장이 윤리적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 정직과 진실을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관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출처 : 우리뉴스(https://www.woor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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